새뜰의 신간 1,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은 새끼줄 악서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은 새끼줄 악서
– 13자리 ISBN / 5자리 부가기호
979-11-958588-0-4 (03910)
– 정가 : 20,000원
– 출간일 / 배본일 : 2017. 9. 4./2017. 9. 4.
– 페이지수 : 772페이지
– 규격 : 신국판(152×225)
<책 소개>
5,914년 전에 우리말이 기록됐다! 인류 최초의 기록이었다
네, 맞습니다. 우리말이 5,914년 전에 기록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 다르게 앎은 무슨 까닭일까요? 우리 민족이 임진왜란 이후 400년 동안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을 완전히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창제 때까지 5,300년 동안 쓰였던 우리말의 기록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은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컴퓨터 코드처럼 자음이나 모음을 부르는 사운드 코드였습니다.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이었던 새끼줄 악서가 컴퓨터 코드와 같은 원리입니다. ① 컴퓨터 코드처럼 자음이나 모음을 부르는 사운드 코드를 정한다. ② 컴퓨터 코드를 파일로 저장하듯이, 사운드 코드를 새끼줄에 매듭으로 기록한다. ③ 웹 브라우저가 컴퓨터 코드를 문자로 바꿔 모니터에 표시하듯이, 악사가 새끼줄의 사운드 코드를 말로 바꿔 발음한다.
아, 왜 사운드 코드인지를 설명하지 않았네요. 악기의 음 5개, 즉 궁, 상, 각, 치, 우로 코드를 만들었기에 사운드 코드라고 부릅니다. 새끼줄 두 가닥에서 25(=5 x 5)개의 사운드 코드가 나옵니다. 그런데 같은 사운드 코드가 초성과 종성에서 자음, 중성에서 모음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운드 코드가 25개였지만, 그 값은 38~45개였다고 봅니다. 그 38~45개의 사운드 코드의 값으로 우리말을 기록했던 방법이 새끼줄 악서였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사운드 코드를 종이 위에 한자로 기록했습니다. 그를 횡서 또는 비서라 불렀습니다. 횡서 또는 비서를 읽으려면, 사운드 코드의 값 일람표가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그것이 발견되고 이어 횡서 또는 비서를 해독하며,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이 증명되리라고 봅니다.
<목차>
여는 글
제1편 우리나라가 5,300년 동안 새끼줄 악서의 문명이었다
제1장 새끼줄 악서와 음자 시스템
제2장 우리 음자는 초성+중성+종성 방식이었다
제3장 중국의 상고 시대도 새끼줄 악서의 문명
제4장 악서는 옛말이 당대어로 번역되며 전승됐다
제5장 예기 중 악기가 새끼줄 악서의 증거
제6장 음보가 발견되면, 어떻게 해독하나?
제7장 가림토 문자가 실용 문자가 되지 못 했던 까닭
제2편 우리말 새끼줄 악서의 전통
제1장 5,914년 전에 우리말이 기록됐다
제2장 배달의 정사인 배달유기가 현존한다
제3장 단군세기는 단군 조선의 정사이다
제4장 앞 장의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 ①
제5장 삼국사기와 화랑세기에서 드러나는 악서의 전통
제6장 앞 장의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 ②
제7장 동국통감에서 추론하는 조상들의 우리 역사관
제8장 새끼줄 악서의 문명은 이런 점이 다르다
제9장 위서론은 새끼줄 악서의 전통을 잊어 생긴 오해
제10장 조상들의 새끼줄 기록을 더 이상 잃지 말자
제11장 조상들의 새끼줄 기록을 연구하는 배달학
제12장 단편적 내용의 추가
제3편 논어에서 드러나는 새끼줄 악서의 중국 전통
제3편의 소개글
제1장 논어 중 일월지언 장과 부지육미 장
제2장 공자가 말하는 문(文)은 결승의 매듭 무늬
제3장 새끼줄 악서의 시대와 어긋나는 어구의 해명
제4장 새끼줄 악서의 시대를 뒷받침하는 어구
닫는 글
<저자 소개>
지은이 정성남은 매체학을 전공했다. 국내 대학과 미국의 대학에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원시적 기록 방법인 새끼줄 악서가 요즘 말로 매체의 구실도 했다. 인류 최초의 매체였다. 그러므로 지은이가 다시 알아냈음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배달과 단군 조선의 정사의 한역본인 배달유기와 단군세기가 현존한다
배달의 건국연도가 기원전 3897년이다. 올해가 2017년이니, 두 수치를 합하면 5,914년 전이다. 환단고기 중 태백일사가 배달의 첫 임금이었던 환웅에 관한 기사를 실었는데, 출처가 배달의 정사인 배달유기인 듯하다. 그러므로 배달유기가 배달의 1,565년 역사 전체를 담았다고 추측한다. 또 세종이 천문류초라는 천문 서적의 편찬을 지시했는데, 배달의 말기였던 기원전 2470년의 오성결집(=화성, 수성, 토성, 목성, 금성 등이 가깝게 모이는 현상)이 나온다. 그러므로 그 오성결집을 배달유기에서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종이 적극적으로 배달유기를 찾았고, 발견했고, 한역했음을 알 수 있다. 배달유기의 한역본이 현존한다. 일제가 훔쳐 갔으니, 현재 일본에 있다. 또 태백일사의 지은이 이맥의 일십당 문고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군 조선이 배달처럼 우리말 새끼줄 악서로 사서를 작성했다. 그 사서를 전승했던 악사들이 강화도에서 살았다. 1363년 이암이 강화도에 가, 악사의 발음으로 단군 조선의 정사를 듣고 한역했던 문서가 단군세기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모른다. 단군세기가 한역 후에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단군세기가 한역 후에 폭넓게 읽혔다. 근대 조선의 태조, 태종, 세종 연간에 식자층이 모두 단군세기를 읽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말해, 단군 열풍이 휘몰아쳤고, 고려 시대 내내 잊힌 존재였던 단군이 확고부동하게 우리 민족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명나라가 그 단군 열풍을 문제 삼으며 일이 심하게 꼬였거나, 그런 사태를 우려했던 근대 조선의 조정이 선제적 조치를 취했던 듯하다. 
당시 임금이 민가가 보유했던 단군세기의 사본들을 모두 수거하여 불태웠다고 추측한다. 그런 고육지책으로 명나라와의 전쟁을 피했다. 그 후 단군세기는 근대 조선의 종료 시까지 금서였다. 그런 사연을 모르는 현대인이 단군세기를 위서로 의심한다. 하지만 위서가 아니다. 단군 조선의 정사(=우리말 새끼줄 악서)의 한역본이 맞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기본 사서가 우리말 새끼줄 악서였다. 삼국사기에 “백제는 개국 이후 문자로 일을 기록했던 적이 없었다. 이때(근초고왕 30년)에 이르러 박사 고흥을 얻었고, (비로소) 문자 기록이 시작됐다”는 서술이 나온다. 개국부터 근초고왕 30년까지 백제가 오로지 우리말 새끼줄 악서로만 사서를 작성했기에, 김부식이 이처럼 서술했으리라. 고구려와 신라도 사정이 비슷했다고 본다. 당시 우리말을 기록하는 유일한 방법이 새끼줄 악서였기에, 사정이 다를 수가 없었다.
이처럼 훈민정음의 창제 이전 우리말을 기록하는 유일한 방법이 새끼줄 악서였다. 자연히 우리 민족의 모든 기록이 새끼줄 악서였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임진왜란 이후 400년 동안 새끼줄 악서를 완전히 망각하며,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 책이 그 혼란을 일소하기를 바란다.

이상입니다.

첨부 파일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은 새끼줄 악서.pdf’를 저장하시어, 인터넷 곳곳에 뿌려 주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홍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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